Untitled Document Javascript DHTML Drop Down Menu Powered by dhtml-menu-builder.com

MEMBER LOGIN

MEMBER LOGIN

하는 말과 듣는 귀의 미학   18-06-01
pastor   716
 
목회 칼럼          하는 말과 듣는 귀의 미학
                                            김범수 목사(워싱턴 동산 교회, MD)
    미국의 NBC 방송에서 앵커 엘렌이 사회를 보는 게임쇼가 있다. 사회자가 처음 사람에게 전달해야 할 말을 말해주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데 듣는 사람들은 귀에 큰 헤드폰을 끼게 한다. 말을 하는 사람도 힘들고, 듣는 사람도 듣기가 어려워지니까 어느 누구도 그 전달자의 말을 정확히 받을 수가 없게 된다. 그래서 프로그램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즐거움을 주게 된다. 전달하는 사람이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은 아이”라고 하면 맨 나중에 받는 사람은 “아이가 울고 있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세상에 가장 중요하고도 기본적인 것은 의사전달 혹은 의사소통이다. 이 의사전달은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하는데 사실 모든 우리의 삶은 다 이러한 커뮤니케이션에서 시작해서 커뮤니케이션으로 마치게 된다. 그 전달의 도구는 여러 가지이지만 기본적으로 주로 눈과 입과 손 그리고 몸으로 하게 된다.  사랑을 하는 사람은 눈을 마주치고, 물건을 파는 사람은 말로 설명을 하고,  슬픔을 당한 사람에게는 손을 잡고, 반가운 사람끼리는 서로 어깨를 감싸 안는다. 이런 모든 행동들을 통해서 그 사람의 말과 그 사람의 마음이 내 귀에 올바로 들리고, 마음에서 바로 이해가 되고 해석이 될 때 소통이라고 한다.  이러한 소통이 원활이 이루어 질 때 사랑과 기쁨, 위 로와 격려, 화합과 연합 그리고 발전과 개발이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소통은 모두에게 시원함을 준다.  이 시원함은 그 어느 것에도 억압되거나 제한되지 않은 자유의 상태이다. 이 자유는 단지 물질적인 풍요가 아닌 상태인데도 정신적 자유가 있기 때문에 모든 상황과 시간을 초월하는 행복의 상태를 누리게 된다.
그런데 입에서 하는 말이 듣는 귀에서 들리지 않고 다른 언어로 들릴 때 불통이 된다. 전달하는 사람의 말과 듣는 사람의 귀가 맞지 않을 때 불통이라고 한다. 불통이 되면 대화의 단절뿐 아니라 마음의 회피, 만남의 억제, 의욕의 상실, 접근의 제한 등으로 인한 오해, 미움, 다툼, 분열, 퇴보, 상실, 실망이 생겨 자유 대신에 통제와 폐쇄가 생기고 그로 인해서 불안감이 생긴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남과 북이 서로 소통의 기회를 맞고 있다. 북한이 하는 말을 남한이 듣는 귀가 있어야 하고, 남한이 들을 수 있는 귀에 북한이 말해 주어야 한다. 사랑한다는 말을 사랑한다는 말로 들어야 하는데 사랑한다고 하는데 듣는 사람이 미워한다는 말로 들린다면 무엇인가 어디에서 잘못이 있는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립보서2:2-3)
  우리는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또 듣고 싶은 귀가 있다. 그 말과 귀가 서로가 하나가 되려면 최소한 이것은 있어야 할 것이다. 논리적인 설득할 수 있는 뜻과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이다. 이것만 있다면 통하지 않을 것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작은 소통을 통해서 우리의 삶 어디에서든지 큰 통일의 아름다움을 이룰 것이다.
 

이전글이 없습니다.
낄끼빠빠 기기박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