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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 교회(요한계시록2:1-7)   18-12-16
pastor   2,360
 
2018.9.16.          에베소 교회(요한계시록2:1-7)
김범수 목사                                        워싱턴동산교회
 
오늘 본문 2장과 3장은 교회를 통해서 세상을 보는 눈을 열게 해 줍니다. 요한계시록 1장에서 하나님은 세상에 일어날 일들을 보여 준다고 했습니다. 그 일들을 하나님의 사자들과 하나님의 교회를 통해서 보여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들과 하나님의 교회는 떨어 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교회에는 하나님의 사자, 종들이 있고, 하나님의 종들을 통해서 또한 교회가 세워지기 때문입니다.
2장부터 3장까지 요한이 이 말씀을 기록할 때에 있었던 소 아시아의 7 개 교회를 말씀합니다. 그 7 개 교회는 당시의 교회 일뿐 아니라 지금의 교회이며, 또 앞으로 미래에 교회가 어떤 모습으로 서 있어야 할 것을 말씀합니다.
 
1. 7개 교회들
 
소아시아,지금의 터어키에 7개 교회들이 있었는데 그 교회 이름들이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교회입니다. 이 7 개 교회를 암기하기 쉽게 이렇게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예뻣어 교회, 서머나 교회는 어머나 교회, 버가모교회는  페라가모 교회 , 두아디라는 두 아들아 교회, 사데는 세다 교회, 빌라델비아는 빌려달라 교회, 라오디게아는 나 어떡해 교회입니다.
이 일곱 교회 중에서 오직 두 교회가 칭찬만 받았고, 나머지 5 개교회는 책망을 받았습니다. 칭찬 받은 교회는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입니다. 이것은 교회가 잘하는 점도 있지만 못하는 점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교회에 대하여 원하는 것은 칭찬보다는 책망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더욱 더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더욱 더 선하고 아름다운 교회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면 먼저 에베소 교회를 보겠습니다.
2. 2장과 3장에서 사용되는 반복되는 말씀

1)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교회의 사자는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말씀의 종들입니다. 에베소 교회의 사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그 말씀을 전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 말씀을 전할 사명은 그 말씀을 듣는 성도들의 생명에 달린 문제입니다. 의사가 환자의 생명이 위독할 때 어떻게 합니까? 어떻게 해서라도 최선을 다해서 생명을 구원해야 합니다. 수술을 하든지, 치료를 하든지, 약을 주든지, 아니면 설득을 해서라도 그 환자를 치료해야 합니다. 교회의 사자는 육신만이 아니라 영혼의 의사입니다. 영혼이 죽으면 의사의 책임입니다. 그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듣든지 아니 듣든지 전하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전해서 들어서 돌아오면 그 피 값을 묻지 않겠지만 전하지 않아서 듣지 못했을 때는 그 죽음에 대한 피값을 묻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사자, 교회의 말씀의 종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더하지도 말고, 빼지도 말고 다 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전하는 사람도 담대하게 전해야 합니다. 또한 말씀을 듣는 사람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사람의 말로 듣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는 것을 칭찬했습니다. 전할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하고,들을 때 사람의 말로 듣지 않는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무나 듣는 것이 아닙니다. 들리기는 하지만 듣지를 못합니다. 우리 귀에 많은 소리들이 들립니다. 그러나 그 소리가 내 귀에 정말 정확하게 들리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팝송을 듣습니다. 그 팝송이 소리는 나는데 그 내용을 모릅니다. 그러면서도 리듬이 좋아서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흔들고 춤을 춥니다. 박수를 칩니다. 이것은 듣는 것이 아니라 들리는 것입니다. 대화를 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을 주고받기는 하는데 귀를 기울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딴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그 말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지지만 그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소리는 듣는데 말씀을 못 듣습니다. 이 말씀을 누가 듣게 합니까? 성령님이 듣게 합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의 마음을 열어 그 말씀을 듣게 합니다. 그 사람의 말이 들리는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그 사람의 영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선생님의 말을 듣고, 부모님의 말을 귀담아 듣는 것은 그 사람의 영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의 영만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그 어떤 언어도 다 듣게 되어 있습니다. 말 못하는 사람과 1년을 살아 보세요. 다 들립니다.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합니다. 하나님의 영을 가지려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그 사람이 미우면 그 사람의 말이 하나도 들리지 않습니다. 말할 때마다 거부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좋으면 그 사람의 말 하나 토시도 다 듣습니다. 청소년들이 유명한 가수나 배우가 입에서 말을 하나 열때마다 소리칩니다.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터집니다. 아무런 의미 없는 말을 했는데도 소리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을 가지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말씀을 듣고 믿기를 바랍니다.

2) 이기는 자

지금 교회는 싸움 중에 있습니다. 이 싸움은 전쟁입니다. 나라와 나라의 싸움입니다. 죽이고 살리는 싸움이요, 영토의 싸움이요, 주권의 싸움입니다. 이 나라와 나라의 싸움에서 지게 되면 나라를 잃어버립니다. 지금 세상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가 싸움입니다. 하나님과 사탄과 싸웁니다. 성령과 악령이 싸움입니다. 영과 육이 싸웁니다. 선과 악이 싸움입니다. 믿음과 불신이 싸웁니다. 사랑과 미움이 싸웁니다.
사도 바울은 이 싸움이 자기 안에도 있다고 했습니다. 마음으로는 선을 섬기는데 육은 죄의 법을 따라간다고 했습니다.
이 싸움은 처절한 싸움입니다. 이 싸움은 애굽과의 싸움, 아말렉과의 싸움, 블레셋과의 싸움, 바벨론과의 싸움입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서 말씀하는 이 세상 최후의 싸움인 아마겟돈의 싸움입니다. 이 싸움에서 이기면 생명의 면류관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 싸움에서 지면 지옥에 떨어집니다. 이 세상에서 잘살고 못사는 것은 잠간입니다. 우리가 죽음 이후에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에베소 교회에는 이기는 자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하고, 서머나 교회에는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인생의 목표는 결국 부자와 가난한 자, 성공과 실패가 아니라 승리와 패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이렇게 인사해야 합니다. “승리합시다.”승리하셨나요?“  마귀를 이기고, 성령 안에서 승리의 개가를 부르기를 원합니다.

3) 회개하라

예수님도 이 세상에 와서 처음으로 하시는 복음의 말씀은 회개의 말씀이셨습니다. 회개는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가나 잘못하고 실수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의 믿음의 사람들은 다 실수했습니다. 넘어졌습니다. 아브라함도, 모세도, 다윗도, 야곱도, 그리고 베드로도 그랬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용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회개입니다. 우리는 다 회개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다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시기에 우리는 다 죄인입니다. 죄인을 구원하신 것만도 감사할 뿐입니다. 이렇게 구원하셨음에도 우리는 또 죄를 짓습니다. 교회에 다니지만 죄인입니다. 학교에 다닌다고 다 아는 것은 아닙니다. 졸업을 해도 다 아는 것은 아닙니다. 박사라고 해도 다 아는 것은 아닙니다. 의사라고 해서 다 아는 것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해서 다 완전한 것은 아닙니다. 내가 완전하다고 할 때 그 때부터 나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주를 버리지 않겠다고 한 그 때부터 베드로는 죄를 지은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볼 때마다 우리는 회개하고 자복해야 합니다. 세리처럼 가슴을 치며 머리를 들지 못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을 회개하기 보다는 남의 잘못을 지적하려고 합니다. 남의 눈의 티는 보면서도 내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합니다. 이런 우리를 향하여 말씀합니다.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라”고 하십니다. 이 회개의 영이 우리의 마음에 넘쳐서 더욱 더 은혜가 넘치기를 바랍니다.

1. 에베소 교회

에베소는 로마제국 소아시아 수도로 6대 로마도시 중 하나이며 인구는 폼페이보다 5배가 넘는 10만 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에베소는 로마시대 이전부터 지중해와 동아시아를 잇는 상업 중심도시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기원전 620년경 에베소에 세워진 '세계 불가사의 건축물'인 아르테미스 신전(神殿)에는 소아시아에서 그리스에 걸친 수많은 사람들의 참배할 정도로 부흥하던 도시였습니다.
기원전 6세기 후반 페르시아 지배와 그 후 알렉산더 대왕 그리고 로마시대를 거치면서 이 도시는 부흥을 거듭하며 지중해 연안 소아시아 항구도시로 위용을 떨친 역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로마인들은 에베소를 로마 최고의 계획도시로 만들었습니다. 도시 구조는 귀족 전용공간과 비 귀족 공간으로 뚜렷이 나눴습니다. 귀족지구는 행정과 입법을 주로 관장하는 귀족 공간이었고 일반인 출입도 철저히 통제했습니다. 황제가 기증한 건물(신전)이 3개나 있을 만큼, 에베소는 로마제국에서 비중이 높은 도시였습니다. 당대 최고의 기술과 자재를 사용했습니다. 목욕탕, 원형 극장, 셀수스 도서관, 황제 기증 신전 등 당시 건축물은 부흥했던 로마도시를 상징하기에 충분합니다.
 
2. 에베소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

1) 칭찬의 말씀: 에베소 교회의 수고와 인내
 
교회의 기능은 세상과 구별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가 세상과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의 거룩성입니다. 교회는 깨끗해야 합니다. 교회가 깨끗해야 하니까 교회는 세상적인 것들을 멀리해야 합니다. 요즘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비판을 받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교회가 교회로서의 권위를 잃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세상과 다른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때 거룩해 집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고 나서 예수님의 12 제자들이 전하여 준 복음은 바로 세상과 구별된 삶이었습니다. 현재의 삶만이 아니라 천국백성으로서 이 땅에서 거룩하게 살라고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 사도들은 예수님과 같은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사도성이 있어야 합니다. 거룩성과 사도성, 이것이 교회의 힘이고,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것입니다. 사도성은 전통성입니다. 전통은 정통입니다. 그 말씀안에 교회가 있느냐 입니다. 말씀 안에 없으면 이단이 됩니다. 초대교회에도 이단이 있었습니다. 가짜 사도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전하여 준 말씀이 아니라 자기들 마음대로 해석하고 전하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단들이 전하는 말을 따라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이단들이 세 종류였는데 에비온파, 가현설파, 그리고 오늘 말씀의 니골라당과 같은 영육분리주의자들입니다. 에비온은 구약의 율법을 지키면서 예수를 따르는데 예수는 동정녀 탄생이 아닌 그냥 사람이라고 믿었습니다. 가현설은 예수님이 그냥 평범한 사람인데 하나님처럼 보인 것 뿐이라고 했습니다.  니골라당은 구원받은 것은 영이라고 하고, 육은 이 땅에서 썩어지는 것이기에 아무런 가치나 의미가 없다고 하는 주장입니다. 그러니까 육적으로 어떻게 살겠습니까? 마음대로 사는 것입니다. 방탕하고, 타락합니다. 문란합니다. 그래서 에베소 교회는 이런 것들이 교회에 들어오지 않도록 철저히 단속을 했습니다. 이런 이단들이 들어오면 교회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교회가 교회가 될 수없습니다. 교회의 거룩함과 사도성이 없어집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위한 교회가 아니라 사람을 위한 교회가 되고 맙니다.
에베소 교회가 이 잘못된 이단들이 교회에 오지 못하도록 철저히 단속을 했습니다. 교회에 그런 사람들이 오면 오지 말라고 했고, 쫓아 냈습니다. 그 사람들 때문에 교회가 힘이 들었지만 교회를 위해서 참았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신앙인답게 살았습니다. 어떻게 살았겠습니까? 거룩성과 사도성을 지키려면 교회는 근면하고 검소하고 절약했습니다. 절은 절제하고, 약은 약속을 믿고 충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 교회를 지켰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교회 안에 있지만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 교회를 바라볼 때 교회는 어떤 곳이 되어야 한다고 합니까? 교회가 세상적인 모습이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교회 안에 권력, 금력, 세력, 부패, 타락, 음모란 것이 있으면 안 됩니다. 그런 것들이 없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조심해야 합니다. 경계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를 향하여 정신을 차리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가지고 있는 생활윤리가 있습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은 술도 먹지 않는다, 담배도 피지 않는다, 마약하지 않는다, 디스코 장에 가지 않는다, 카지노에 가지 않는다, 사치하지 않는다, 투기하지 않는다, 세금보고를 잘한다, 돈에 욕심을 갖지 않는다, 공공도덕을 잘 지킨다 등입니다.
이런 것들을 늘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까 교회가 어떻게 됩니까? 교회의 고립화가 됩니다. 교회의 고지식화가 됩니다. 교회의 게토화가 된다는 것입니다. 상식을 벗어난 것들에 대해서는 용납할 수 없게 됩니다. 좋은 의미에서 세상적인 것을 멀리한다고 하지만 은연중에 마음속에 교회가 세상에 대하여 우월감을 갖게 됩니다. 그러니까 좀 깨끗하지 않고 올바르지 않는 것들을 보면 거부하게 됩니다.
예) 다이어트가 좋은 것입니까? 나쁜 것입니까? 좋은 것입니다. 자기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 좋은 음식과 좋지 않은 음식을 구별하고 관리해서 먹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다이어트를 하다가 유혹을 받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거식증입니다. 거식증은 음식 먹는 것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 하다보면 자기 우월감에 사로잡힐 위험이 있습니다. 잘못하고 올바르지 않은 것들을 보면 ALLERGY 반응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올바른 것을 지키는 신앙인들이 올바르지 못한 것을 보면서 정죄하고 비판하는 것입니다. 이런 예가 예수님당시에 바리새인들의 신앙을 보면 됩니다.
바리새인들은 유대인 들 중 하나님의 율법을 가장 잘 지킨다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이 오셔서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자 예수님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외식하는 신앙을 지적했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이런 예수님을 곤경에 빠지게 하기 위해 현장에서 간음한 여인을 잡아서 예수님 앞에다 데려다 놓고 이렇게 물었습니다. 모세의 율법에서는 이런 여인은 돌로 쳐 죽이라고했는데 예수님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만일 예수님이 이 여인을 돌로 쳐 죽이라고 하면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사랑의 법과 다르게 말하니까 예수님 자신의 말씀에 일치가 되지 않고, 그렇다고 이 여인을 돌로 쳐 죽이면 안된다고 하면 모세의 율법을 무시하는 것이기에 전통을 무시하는 사람이 되고 해서 참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바리새인들 앞에서 땅에 손가락으로 글을 쓰고 다시 일어나서 그들에게 말씀합니다. “너희 중에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
에베소 교회가 한 일을 지금 말씀하는데 이렇게 말씀합니다.
2절 3절입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계 2: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에베소 교회가 잘 한 일이 무엇입니까? 세상과 다른 거룩함이 있었습니다. 그 거룩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은 사람의 말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이 전하여 준 말씀이기에 그 말씀은 믿을 수 있는 역사적 전통과 사도적인 권위를 가진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지킬 수 밖에 없고 그 말씀을 지키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성도요 하나님의 제자로 인정받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에베소 교회가 그렇게 하면서 놓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에베소 교회가 세상을 등졌다는 것입니다. 세상과 구별해야 하는데 세상을 거부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가 가져야 하는 포용성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실 에베소 교회를 향해서 칭찬했던 행위와 수고와 인내는 사실 칭찬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를 얻으려고 하다가 다른 하나를 버렸기 때문에 아무런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전반적으로 보면 에베소 교회는 공적인 의를 지켜려고 하다가 사랑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에베소 교회를 향한 권면의 말씀이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기에 처음 사랑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미웠어 교회가 아니라 예뻣어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권면합니다. 올바르지 않은 것을 밀어내고, 거부하고, 비난하다 보니 예쁘다고 하는 마음이 어느새 사라진 것입니다.

1) 권면의 말씀: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구원의 은혜를 강조했습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엡2:4-5)
바울은 구원받은 것을 가장 큰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죄인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용서함을 받은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구원받은 것을 그 큰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그 큰 사랑’
이것이 구원의 감격이고, 구원의 사랑이고, 구원의 믿음입니다. 이 사랑은 죄인을 용서해 준 사랑입니다. 자기와 같은 죄인을 용서해 준 것은 하나님의 풍성하신 긍휼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에베소 교회를 향한 복음이었습니다. 믿음은 무엇입니까? 믿음은 은혜입니다. 은혜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긍휼이고, 용서입니다. 이것들은 죽이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진리는 죽이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를 살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만일 어떠한 경우에라도 교회의 이름으로, 말씀의 이름으로 살리는 길이 아니면 그것은 믿음도 아니고, 은혜도 아닙니다. 사실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고린도 전서에서도 사랑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13:1-3)
사랑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사랑은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실행할지라도 그 가운데 사랑이 없으면 그 공의는 아무런 것이 아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공의도 행하고, 그리고 더욱 더 사랑을 해야 합니다.
이 공의가 누구의 공의입니까?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이 사랑이 누구의 사랑입니까?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공의와 사랑이 함께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무너지는 이유는 나의 공의와 나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판단하는 공의는 하나님의 공의에 미치지 못합니다. 나의 사랑으로 제한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는 이것을 질문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사랑이 있습니까? 그 사랑이 어떤 사랑입니까? 그 큰 사랑입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린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어떤 사랑입니까? 모든 것을 다 용서해 주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실제로 어떤 사랑이어야 합니까? 시기와 질투가 없는 사랑입니다. 겸손한 사랑입니다. 모든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사랑입니다. 다툼과 허영이 없는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자기를 십자가에 못을 박고 죽는 사랑입니다.
사도 요한은 에베소 교회가 이 사랑을 잃어 버렸기에 회개하라고 합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촛대를 옮긴다고 했습니다. 촛대를 옮긴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교회에서 하나님이 떠난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에베소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책망이고, 심판이고, 하나님의 유기입니다. 유기는 하나님이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떠나심, 하나님의 버리심, 하나님의 포기하심이 얼마나 큰 저주입니까?
그러니 사랑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이 사랑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예)사람이 관계를 갖다보면 오래 지속하는 것도 있지만 깨지는 수가 많습니다. 이런 경우가 정치나 사업할 때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래 가는 사람에게 부르는 이름이 동지입니다. 이번에 쌍용 자동차 해고 노동자가 9년만에 복직이 된다고 했습니다. 2009년에 해고 되었는데 무려 9년 동안 복직을 위해 싸웠습니다. 9년이면 어떻습니까? 참을 수 있고 견딜 수 있겠습니까? 그동안 죽은 사람만 30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버틸 수 있었던 힘이 바로 그들 간에 가졌던 동지의식입니다. 동지라고 하니까 꼭 북한의 공산당에서 쓰는 동무, 동지 같아서 좀 오해를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꼭 그렇게만 볼 것이 아닙니다. 신앙 안에서 동지가 필요합니다. 그 동지는 사랑의 동지입니다. 그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오는 동지입니다. 이 동지가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예수님을 위해 죽을 수 있는 동지입니다. 자기마음대로 변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를 위해 십자가를 질 수 있는 그런 신앙의 일군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가진 자들입니다.
이 사랑만 우리에게 있으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어떤 허물과 잘못이 있어도 다 넘어가고 용서가 됩니다.
공항에서 제일 긴장되는 순간이 세관통과입니다. 그 세관이 도장을 찍어주면 마음이 얼마나 편한지 모릅니다. 우리도 사람에게 도장을 찍어 주어야 합니다. 그 도장은 통과의 도장입니다. 넘어가는 도장입니다. 지나가는 도장입니다. 막아 놓고, 가둬 놓고,기다리게 하는 그런 것이 아닌 내 마음에서 시원하게 통과시켜주는 것, 이것이 사랑입니다. 그래서 계속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하고, 교제하고, 관계하는 것입니다.
 
 결론

이런 사랑을 실천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7절에서 말씀합니다.
(계 2: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믿음없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가 무슨 매력이 있겠습니까? 오히려 맛있는 과일을 먹는 편이 낫다고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다 없어지고 사라집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기다리는 것은 천국과 지옥입니다. 은혜받고 용서함 받아 구원함을 받은 사람은 천국, 하나님의 낙원에 갑니다. 그 낙원에서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습니다. 이 땅에서 먹는 음식은 단 이 세상에서의 잠간뿐입니다. 먹어도 먹어도 우리를 살게 하지 못합니다. 먹는 것은 곧 우리를 죽게 하는 것들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먹고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낙원에서 먹는 생명나무의 열매는 영생입니다. 먹어도 먹어도 영생입니다. 먹으면 죽는 나무가 아니라 생명의 과일입니다.
우리가 왜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어야 합니까? 그것이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람에게 영생 외에는 아무 것도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이 땅에서 살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을 하면 살아야 합니다.
그 사랑은 모든 것을 다 용서해 주는 사랑입니다. 그 용서가 있다면 미웠어가 아니라 예뻣어가 됩니다. 이런 사람이 많이 있는 교회, 그 교회는 예뻣어 교회, 에베소 교회가 됩니다.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3)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계 2:1)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계1:13
(계 2: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계 2: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계 2: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계 2: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계 2:6)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계 2: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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