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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박사들의 성탄(마태복음2:1-12) 김범수 목사 워싱턴동산교회. 2017.12.17.   17-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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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7. 동방박사들의 성탄(마태복음2:1-12)
김범수 목사 워싱턴동산교회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록한 복음서에서 마태와 누가는 다릅니다. 마태는 유대인을 대상으로 기록했기에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으로 오심을 기록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의 신앙에 경고를 주기위해 이방인들을 대표하는 동방의 박사들이 예수께 경배하러 왔음을 기록합니다. 당시에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하지 않음을 책망합니다. 그리고 누가는 예수님께서 사람으로 오심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탄생을 들에서 양을 치는 목자들에게 처음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는 것을 기록했습니다. 오늘 마태복음에서는 동방의 박사들이 별을 보고 따라와 예루살렘에 와서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이가 어디 계시뇨 하며 헤롯에게 물어보는 사건이 나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동방의 박사들은 어떻게 처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했는가를 보면서 우리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축하하며 우리 삶은 어떠해야 하는 가를 보기를 원합니다.
1. 울림
동방의 박사들은 지금의 이라크의 별을 연구하는 박사들입니다. 당시에 별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기후와 사람의 운명, 미래까지 연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았습니다. 박사들이 하늘의 별들을 연구하는 데 그들이 처음으로 본 별을 보았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저 별은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신 것을 알리는 별”이다. 저 별은 나의 별이 아니라 저 별은 유대인의 왕, 예수님이 태어나신 것을 알리는 별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시입니다. 유대인이 아니고 이방 나라의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계시하셨습니다. 알리셨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감동하였습니다. 깨우쳤습니다. 이전에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는데 마음에 견딜 수 없는 어떤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이 가르쳐 알리셨습니다. 예수님을 알리셨고, 예수님이 구원자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들은 지혜롭고 재물도 있고 권세도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그 별이 하나님이 가르쳐 준 예수님을 향한 별이라고 순종했을까요?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했기 때문입니다. 딱딱한 내 머리, 정신, 경험, 정신, 논리, 이론, 판단, 배움, 학벌로 가득찬 그 심령을 감동했습니다. 감동은 뭉클하게 한 것입니다. 배추가 소금으로 절여서 부드러운 것처럼, 딱딱한 고기도 두드려서 쫄깃쫄깃하게 된 것처럼, 하나님의 성령이 그들의 마음에, 내 마음에 들어와서 교만할 수 있고, 지혜로운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성령이 감동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감동하여... 하나님의 성령이 감동하여 내 차가운 머리를 따뜻하고 뜨거운 영혼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 감동은 내 심령은 울림이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께 무릎꿇고 엎드렸습니다. 아는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배운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들 중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알기만 했습니다. 머리로만 지식적으로 알았습니다. 감동이 없었습니다. 가슴에 울림이 없었습니다. 알기만 했지 동방의 박사들처럼 알아서 감동해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마음에 꿈틀거림이 없었습니다. 생각만 했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믿음은 생각만이 아니라 움직여야 합니다. 믿음은 지식만이 아니라 마음의 울림, 감동입니다. 내 마음의 울림, 사랑하장.... 기도하장...처럼 징소리처럼울려야 합니다.
신앙은 감동해야 합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아 별따라 온 것처럼 예수님을 경배하고 예배하는 이유는 성령의 감동을 받아 순종하여 예수님과 동행하고 예수님과 더불어 먹는 그런 영적 교제의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괜히 성탄절, 메리크리스마스가 아니라 감동적인 믿음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2. 걸림
동방의 박사들이 그 별을 따라 왔습니다. 거기서 유대 베들레헴까지 1,000km됩니다. 먼 거리입니다. 하루에 가는 거리가 아니라 며칠 걸리는 거리입니다. 빠르면 한 주일, 느리면 한 달이 걸릴 수 있는 거리입니다. 거리도 멀지만 험한 길입니다. 위험하고, 목이 마르고, 피곤하고, 어려운 길입니다. 포기하고 싶고 쉬고 싶은 그 길을 걸어 왔습니다. 마음에 결심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걸림이 필요합니다. 시간의 걸림, 과정의 걸림, 땀과 수고의 걸림, 인내의 걸림, 오래 걸림이 있었습니다. 신앙은 걸린다. 입으로 고백했으면 책임을 져야 합니다. 책임은 행동이고, 행동은 열매고, 열매는 증거고, 증거는 인생이고, 인생은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고백은 믿음의 역사가지 가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나 혼자 믿는 것만이 아니라 교회의 역사, 세계의 역사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나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것만이 아닙니다. 나를 통하여 가정의 역사, 사회의 역사, 정치의 역사, 세계의 역사를 만들어야 합니다. 한 사람의 순수한 신앙을 지켜서 지금의 우리의 신앙을 유산으로 물려 준 것처럼 우리도 그런 역사를 만들어야 합니다.
인내는 신앙의 중심입니다. 신앙의 파워, 능력입니다. 능력은 기적, 능력은 놀라운 일들, 역사, 병고침, 놀라운 부흥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 비밀은 인내입니다. 십자가를 오래 참는 것이 인내입니다. 고통과 비난과 처절한 실패감 속에서, 억울함속에서 참아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서하지 않습니까? 결혼할 때 선서하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힘들 때나 어려울 때나 남편과 아내는 서로 사랑하겠느뇨? 이것이 걸림입니다.
내가 잘 살때나 못살때나 어려울 때나 힘들때나 자식들이 잘 될 때나 자식들이 힘들때나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별을 보고 한 걸음 한 걸음 주를 따라 갔습니다. 찬송가 가사처럼 “한 걸음 한 걸음 주를 따라 가세 날마다 날마다 주와 함께 걷네”
잘 나갈 때나 어려울 때나 못나갈 때나 교회가 크나 교회가 작으나
내 신앙을 그대로 지켜야 합니다. 끝나기 전까지 끝 난 것이 아닙니다. 한국 축구가 일본에 4:1로 역전승했습니다. 전반전 3분 만에 패널티 킥으로 1:0으로 지기 시작했습니다. 기분이 상한 사람은 그만 보았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 후반전까지 4:1로 역전승했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걸리는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참아내야 합니다.
3. 누림
동방의 박사들은 별이 베들레헴에 예수님이 태어난 곳에 머물렀을 때 가장 기뻐하고 기뻐했습니다. 에수님의 탄생은 기쁨입니다. 동방의 박사들이 오랜 길을 걸어 왔습니다.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드디어 기뻐하게 되었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린 보람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찬송을 부르지 않습니까? “때때로 괴롬 당하면 때때로 기쁨 누리네 풍파 중에 거느리고 평안할 때 거느리시네”
신앙은 항상 두가지로 나옵니다. 하나님은 고통을 주시시만 한 편으로는 축복을 주십니다. 그래서 고통은 축복입니다. 십자가는 환난과 고통이지만 3일 후에는 부활의 영광이 있습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올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 고통 속에서 기쁨을 누리는 사람이 참 신앙입니다. 어떤 분이 이 말씀을 좋아합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날 때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히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예비하여 주십니다. 우리가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예비하십니다. 요셉을 고통을 주셨지만 요셉에게 기쁨을 누릴 수 있는 형통함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셨습니다. 그 기쁨은 우리를 구원해 주신 구원입니다. 지옥에서 천국으로 구원해 주신 기쁨입니다. 이것이 선물입니다. 은혜입니다. 생명의 축복, 구원의 축복이 감사한 것입니다.
생명을 주신 하나님이 영혼의 생명까지 주셨으니 이제 천국의 소망을 주신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것도 주시고, 저것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 복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하루를 즐겁게, 하루를 감사하게 살아야 합니다. 누려야 합니다.
4. 드림
울림, 걸림, 누림까지 끝나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그것은 드림입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예수님께 그냥 빈손으로 오지 않았습니다.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가지고 와서 아기 예수께 엎드려 경배하고 드렸습니다. 신앙은 드림입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처음부터 올 때 왕께 무엇인가 드리기 위해 떠났습니다. 황금은 믿음, 유향은 사랑, 몰약은 소망입니다. 변치않는 믿음, 향기나는 사랑, 썩지 않는 소망, 이것은 다 예수님의 은혜를 상징하는 것들입니다.
신앙은 드림입니다. 드리지 않고서는 꿈을 dream할 수없습니다.
한국어로 드림은 영어로 드림입니다. 드려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축복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너희가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 남에게 드리지 않고서 어떻게 남이 나에게 대접할 것을 Dream하겠습니까?
모든 것들이 다 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 드림이 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기쁨이 되지 않습니다. 달란트의 비유가 그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최선을 다해서 드려야 합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최고로 높은 왕에게 드릴 예물을 준비했습니다. 그것이 경배였고 존경이었습니다. 그들은 마음을 가지고 왔습니다. 물질을 가지고 왔습니다. 물질이 없어도 마음만 있어도 부자입니다. “마음이라도 부자가 되자! 마음으로도 대접하자!”
드림에 인색하면 존경을 받지 못합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은 아들을 드렸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드렸기에 별과같은 자손들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적게 드리는 자는 적게 받고 많이 드리는 자는 많이 받는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드려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받았기 때문입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은헤를 받았습니다. 죄 용서 받았습니다. 값없이 용서함 받았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 마음과 정성과 삶을 드려야 합니다. 번제를 드려야 합니다. 태워야 합니다. 하나도 남김없이 태워야 합니다.
드림은 믿음입니다. 믿음은 산제사입니다. 로마서12:1에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예배니라
사랑하면 내 모든 것을 드립니다. 사랑하면 시간을 드립니다. 공간을 드립니다. 물질을 드립니다. 아깝지 않습니다. 오히려 즐겁고 행복합니다. 그래서 말씀합니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복이 있다.”
결론
동방 박사들의 성탄은 울림,걸림, 누림, 드림의 성탄절이었습니다. 우리의 성탄절, 우리의 믿음의 생활도 그래야 합니다. 마음의 감동을 받아 삶에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오래 걸려도 참아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헌신하고 예배하여야 합니다. 평생토록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축하하고 경배하는 성탄의 믿음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아담과 그리스도(로마서5:12-21) 김범수 목사, 워싱턴동산교회,2017.12.03 
예수님과 믿음(마가복음2:1-11),김범수 목사,2017.9.17. 워싱턴동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