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Javascript DHTML Drop Down Menu Powered by dhtml-menu-builder.com

MEMBER LOGIN

MEMBER LOGIN

믿음의 증거(마가복음16:14-18), 김범수 목사, 워싱턴동산교회, 2017.8.27.   17-09-25
pastor   2,269
 

주일예배                                            김범수 목사
        2017.08.28.  믿음의 증거(마가복음16:14-18)

바람이 불면 나무가 흔들립니다. 날씨가 흐리면 비가 오게 됩니다. 이것처럼 믿음이라는 것은 반드시 나타나는 증거가 있습니다. 믿음만이 아닙니다. 사랑도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은 행복해 보입니다. 서로의 얼굴을 보세요. 행복해 보입니까?
오늘 본문에 17절에 믿는 자들에게는 표적이 따른다고 했습니다. 표적이라는 말은 기적을 말합니다. 기적은 무엇입니까? 일어날 수 없는 것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기적은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이 아니라 특별하고 범상한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것도 기적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일반 사람들의 수준과 다른 그 어떤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그 증거가 무엇입니까? 5가지로 말씀합니다. 이 5가지가 내 삶에 있기를 원합니다. 그 5가지가 있을 때 내가 믿음의 사람인 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1.귀신을 쫓아냅니다(귀)
귀신이라는 말이 그렇게 기분좋은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귀신하면 전설의 고향을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귀신은 사실 다 거짓말입니다. 이렇게 알면 됩니다. 전설의 고향에서 나오는 귀신은 다 가짜다. 귀신은 그게 귀신이 아니다. 전설의 고향에서 나오는 귀신은 다 죽은 사람의 혼이 이 세상에 나와서 활동하는 것으로 말합니다. 이 세상에 죽은 혼이 다시 나와서 떠돌아 다니는 귀신은 없다.
그러면 정말 귀신은 무엇인가? 귀한 신발이 귀신이 아니고 더러운 영이 귀신입니다. 귀신은 마귀가 부리는 신이 귀신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부리는 신은 천사입니다.  천사는 하나님을 섬기는 영입니다. 마귀가 부리는 신은 귀신입니다.  마귀는 하나님에게 대적하는 악한 영입니다. 마귀가 사람을 타락하게 했습니다. 그 마귀의 부리는 영이 바로 귀신입니다.
마귀의 부리는 종, 섬기는 종이 귀신입니다. 귀신은 마귀의 영입니다. 마귀가 원하고, 마귀가 갖고 있는 그 본질을 따릅니다.
마귀의 별명은 거짓의 아비입니다. 죄의 본질입니다. 마귀는 죄를 짓게 하고, 그 죄로 인해 죽고 멸망시키는 일입니다. 요한복음 10장에 ‘도적이 오는 것은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은 악한 마귀의 영에 의해 지배를 당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에서 바울은 우리가 이 악한 영과 싸움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엡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우리는 날마다 마귀들과 또 마귀들이 부리는 귀신들과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마귀의 영은 우리 마음에 머물러 있습니다. 마가복음에서는 그 마귀에게 속한 영들의 실체를 말씀합니다.
(마 15:19)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
마귀는 우리에게 미움다툼시기질투 근심염려불안걱정긴장초조황당당황 이 8가지가 마귀에게 속한 것들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이것들을 물리쳐야 합니다. 내 안에서 이런 것들이 머물르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쫓아내야 합니다.
예)한국에 멧돼지가 많아졌습니다. 옛날에는 멧돼지가 없었는데 요즘에는 멧돼지가 너무 많아서 골치입니다. 멧돼지가 한번 밭에 오면 그야말로 쑥대밭이 됩니다. 한 해동안 농사한 그 밭이 다 망쳐 버립니다.
1) 검은색 차양막으로 울타리 치기
2) 호랑이 소리를 틀어주기
3) 불빛을 이용해서 쫓아내기
우리에게 마귀의 영이 올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영적인 사람들은 막아야 합니다.피해야 합니다.  찬송해야 합니다. 말씀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2.새 방언을 말합니다(방)
방언은 나라의 말입니다. 각 지방의 말입니다. 모든 언어입니다.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언어가 다 방언입니다. 그런데 그 말이 새 방언이라 했습니다. 말은 말인데 처음 듣는 말입니다.
예)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오순절날에 성령이 강림하였습니다. 그 때 기도하던 성도들이 새로운 방언으로 기도하였습니다. 그 때 여러 곳에서 모여 든 흩어진 유대인들이 그들이 살고 있었던 그 방언을 듣자 놀랐습니다. 기도하던 성도들은 그들이 기도하면서 하는 말이 어떤 말인지 몰랐는데 그 지방에서 온 사람드은 그 말이 자기들의 동네의 말인 줄 알았습니다. 그 말이 얼마나 새로웠겠습니까? 미국 사람이 한국말을 한다고 해 보세요. 얼마나 신기하고 놀라웠겠습니까?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입을 열어서 하는 말이 방언이 되어야 합니다. 이 방언이 기도가운데서도 나와야 합니다. 무엇이 방언입니까?
들었던 말인데 다른 말입니다. 또 몰랐던 말입니다. 새 방언을 말한다는 것은 말은 말인데 좋은 말입니다. 예쁜 말입니다. 아름다운 말입니다. 거룩한 말입니다. 그 말은 어떤 말입니까? 그냥 내 뱉는 말이 아니고 생각하고 하는 말입니다. THINK하는 말입니다.
THANK YOU/HOW ARE YOU DOING/I AM SORRY/NICE JOG/KEEP UP THE GOOD WORK/입니다.
속담에 ‘말 한마디로 천냥 빛을 갚는다.“ 경우에 알맞은 말은 은쟁반 위에 금사과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새방언입니다.
그런데 새 방언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세상에 제일 아름답고 좋은 말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에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언어입니다. 다 알고 있는 말입니다. 이 말씀을 말하면 다 통합니다. 우리는 이 새방언인 말씀을 우리의 언어와 말이 되어야 합니다.
예화) 베드로가 제자가 되기 전에는 어부였습니다. 어부가 되었을 때에는 어부의 말을 했습니다. 어부의 말을 했을 때는 무엇을 먹을 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언어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제자가 되고, 성령의 충만을 받은 후 베드로의 언어가 달라졌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을 위해 어떻게 살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게 할까라는 언어로 달라졌습니다. 그것을 보고 사람들이 ‘학문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적용) 믿음의 사람들은 믿음의 언어를 가져야 합니다. 땅의 언어가 아니라 하늘의 언어, 신령한 언어를 사용해야 합니다.
예) 어느 목사님이 친한 친구에게 복음을 전했다. 오랜 기도 끝에 드디어 그 친구가 와이셔츠 주머니에 담배를 꽂은 채 교회로 왔다. 그래도 와 준 게 고마와서 되도록 앞자리에 앉히고 목사님은 뒤에서 눈물로 기도했다.
제발 은혜 받게 해 달라고... 설교는 시작됐고 친구는 성령의 감동을 받기 시작했다. 담뱃갑을 꺼내 바지 뒷주머니에 넣고 손수건을 꺼내 훌쩍거리면서 많은 은혜를 체험했다. 예배는 끝났고 사람들은 다 돌아갔는데, 그 친구는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목사님이 옆에 가서 왜 안가냐고 물었다. "내가 은혜를 받았는데 어떻게 그냥가냐" "그럼 어쩔려구" "은혜를 갚아야지..." "어떻게 갚을 건데.....?" "이 교회 장로님이 총 몇 분이나 되냐?" "다 모이시라구 해라." "아니 다 모아서 뭐할려구?" "은혜를 갚아야 할 거 아냐?" "아니 은혜를 어떻게 갚을 건데, 목사님들을 다 모으라고 해?"
"내 오늘 한잔 쏠게!"
교회의 성도들은 교회의 언어, 하나님의 말씀의 말을 해야 합니다. 그 언어는 1) 거룩한 언어 2) 사랑의 언어 3) 믿음의 언어 4) 감사의 언어 5) 소망의 언어가 되어야 합니다. “말씀만 합시다.”
3. 뱀을 집으며(사)
뱀은 모든 동물 중에서 가장 사악한 동물입니다. 창세기 3장에 보면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3:1)고 말씀했습니다. 뱀은 사단이고, 악한 영의 상징입니다.
뱀을 집는다는 것은 악한 것을 정복하고,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예) 하나님꼐서 모세를 바로 앞에 가서 서라고 하실 때 모세에게 기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모세에게 손을 품에 넣었다가 빼라고 합니다. 그 때 손에 문둥병이 생겼습니다. 손을 다시 품에 넣으라고 하셨습니다. 손이 깨끗해졌습니다. 다음에 모세가 가지고 있는 지팡이를 땅에 던지라고 했습니다. 그 때 지팡이는 땅에서 뱀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 뱀을 다시 집으라고 했습니다. 그 지팡이가 뱀이 된 그 살아 있는 뱀은 진짜 뱀이었습니다. 모세가 그 뱀을 집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모세는 그 뱀을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뱀을 손에 집었습니다. 두려움 없이 담대히 집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집으라고 하니 집었습니다.
예) 이스라엘이 출애굽하고 나서 바로 애굽의 바로가 이스라엘을 뛰 쫓아 왔습니다. 이스라엘은 뒤로 갈 수 도 없고 앞으로 가자니 홍해가 가로 막혀서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팡이을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 밀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지금 참 어려운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 그대로 지팡이를 손에 들고 바다를 향해 내 밀었습니다.
적용) 믿음은 순종이고, 믿음은 담대함입니다. 어떤 것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두려워 할 것이 없습니다.
예화)★ 루터는 카톨릭교의 미신적인 의식과 폐단을 지적한 95개조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로마법왕으로부터 파면장을 받아 군중 앞에서 불사르고 "나는 로마법 왕의 지배는 벗어날지라도 하나님은 나를 도울 것이니 나는 어디까지나 올바른 종교를 전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얼마 뒤에 웹스에서 종교회의에 소환장을 받고 얼굴빛이 변해졌다.
당시 종교회의는 재판소가 되었던 것이다. 웹스회의 전날 밤에 그의 아내가 남편 얼굴을 바라보며 "여보, 당신의 그 얼굴이 뭐요? 당신의 마음에 올바른 일이라면 기뻐해야 할 것이 아니요. 당신은 지금 두려워하고 있지 않소. 하나님을 믿는다면 왜 두려워하십니까? 당신은 용기를 내어 내일 회의에 나가야 합니다. 그렇게 자신이 없어요?"
아내의 말에 대답이 없었습니다.
잠시 후에 "감사하오. 잘 말해 주었오. 사실은 회의에 나가는 것이 두려웠오. 그러나 이제 당신에 말을 듣고 용기를 얻었오."하고 다음날 웹스회의에 나가면서 저 지붕에 기와 장과 같이 많은 대적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이 같이 하시니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용기를 가지고 참석하였다가 무사히 피할 길을 주셨습니다.
적용) 우리는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려야 합니다.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4. 무슨 독을 마시든지 해를 입지 아니하며(독)
세상에 좋은 것들도 많지만 독이 많이 있습니다. 요즘 한국에서는 달걀에 살충제가 있어서 많은 달걀들을 다 폐기처분한다고 합니다.
그 외에 우리가 먹을 필요가 없는 독들이 많습니다. 이 말씀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이 말씀은 무슨 독을 다 먹어도 하나님께서 지켜 주신다는 것으로 해석하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독도 해독할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독을 마시지 말고 독에 들지 않으면 됩니다.
이게 제일 좋은 방법입니다. 마약, 술, 약, 다른 화학 약품을 안먹으면 됩니다.
우리 육신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들도 독이 있지만 사실 더욱 더 큰 독은 영혼의 독입니다. 교회 다니면서 제일 어려운 것이 무엇입니까? 사람입니다.
교회는 신앙공동체입니다. 신앙은 하나님을 먼저 보는 것입니다. 위를 보는 것이지 땅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인지라 우리는 땅을 봅니다. 땅에서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이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보실 때 사람은 무엇입니까? 사람은 사랑해야 할 존재입니다. 그래서 사람이라는 말이 붙은 것입니다. “사람은 사랑해야 한다.” 이 말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살다보면 사랑해야 하는데 사랑할 수 없는 마음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검은 머리 가진 짐승은 거두면 안된다.”
이 얼마나 슬픈 말입니까? 여러분도 그런 생각을 하십니까? 서로 위로해 주시기 바랍니다.“힘내세요!”그런데 만일 다른 사람이 나를 향해서 그런 섭섭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마음을 내가 다른 사람에게 주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니 우리는 내가 남에게 상처를 줄 수 있고 또 남에게 상처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남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나도 모르게 할 수있습니다. 남이 나에게 인사를 하는데 내가 그 인사를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내가 받기 싫어서 안받은 것이 아니라 어쩌다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세 번 계속 될 수 있습니다. 왜요? 사람이니까!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가 나를 지켜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섭섭한 일을 해도 나는 섭섭하지 않는다. 그게 나를 지키는 방법입니다. 정신과 의사인 신동근 전문의가 제안하는 방법입니다.
첫째, "사람은 원래 남을 헐뜯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인정하자"
둘째,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으려 하지 말자"
셋째, "욕은 들어도 먹지는 말자"
넷째, "내가 먹지 않은 욕은 욕한 사람에게 돌아간다고 생각하자"
적용) 마음의 건강은 육신의 건강입니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마음의 병이 육신의 병이 됩니다. 무슨 독을 마시더라도 해를 당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5. 병자에게 손을 얹은 즉 나으리라(병)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중의 하나는 병을 치료하는 복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주신 권세입니다. 예수님은 병자를 치료해 주었습니다. 사도들은 병자에게 손을 얹고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병이 들었을 때 하나님은 고쳐 주십니다.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병을 고치십니다. 무슨 아픔이 있든지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야고보서에 말씀합니다. “너희 중에 누가 병든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하여 올 것이요 그들은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말씀했습니다.
아픔을 당합니까? 아플 때가 있습니까? 기도를 해야 합니다. 기도해달라고 부탁해야 합니다. 그러면 고침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의사를 통해서, 약을 통해서, 사람을 통해서 고치십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고치십니다. 혈루증 앓던 여인, 38년된 병자, 앉은뱅이, 죽은 나사로까지 고쳐 주셨습니다.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러한 간증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체험해야 합니다.
아플 때 고쳐 주시는 것만 아니라 또한 아프지 않고 살게 하신 것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프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플 때 고쳐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연약하고 아픈 것을 아십니다. 우리가 연약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서 긍휼과 자비를 베푸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연약할 때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14절에서 예수님은 부활하셨는데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룟유다를 뺀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셔서 믿음없음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셨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착하고 선합니까?
하나님이 오늘 우리의 믿음과 마음을 보시고 기뻐하기를 원합니다.
무엇을 믿어야 합니까? 생명의 근원이 되신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막 16: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6)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막 16:18)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결론
예수님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를 원하십니다.
남의 마음을 빼앗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가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남을 가르칩니까? 내가 확신이 없는데 어떻게 남을 믿으라고합니까? 내가 그렇게 살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남에게 착하게 살라고 합니까? 내가 남을 사랑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사랑의 복음을 전합니까? 그래서 믿는 사람들에게 기적이 있어야 합니다. 표적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인가 남다른 삶의 증거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 증거가 바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는 것입니다. 삶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마음에 상처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건강하게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의 증거들입니다. 이 증거들을 갖기를 원합니다.
 

믿음과 삶(마가복음2:1-12), 김범수 목사, 워싱턴동산교회, 2017.9.3. 
라합의 믿음(여호수아2:1-15), 김범수 목사, 주일예배, 2017.8.20. 워싱턴동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