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 Document Javascript DHTML Drop Down Menu Powered by dhtml-menu-builder.com

MEMBER LOGIN

MEMBER LOGIN

라합의 믿음(여호수아2:1-15), 김범수 목사, 주일예배, 2017.8.20. 워싱턴동산교회   17-08-20
pastor   2,931
 

주일예배                                            김범수 목사
        2017.08.20. 라합의 믿음(여호수아2:1-15)
산다는 것은 무엇이라고 말할까요? 사는 것은 먹는 것이다, 사는 것은 배우는 것이다, 사는 것은 일하는 것이다, 사는 것은 행복을 찾는 것이다, 사는 것은 선을 행하는 것이다 뭐 여러 가지 말로 정의를 할 것입니다.
저는 ‘산다는 것은 기회이다’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왜 기회입니까? 사는 것은 단 한 번 뿐이기 때문입니다. 운동 경기가 왜 재미있는지 아십니까?
기회가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의 기회, 그리고 공격과 수비를 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축구는 90분 동안만 뛰게 됩니다. 야구는 9회까지 합니다. 무한정 기회를 주면 그게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프랑스 요리가 왜 맛있는지 아십니까? 적게 줘서 맛있는 것입니다. 따라해 보세요. “맛있는 음식일수록 양이 적다.”
인생의 시간이 많습니까? 적습니까? 적습니다. 그러니까 인생은 맛있는 것입니다. “인생은 맛있다.” 그러면 맛있는 인생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기회를 잘 살려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라합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이 라합은
1. 자신을 이긴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는 가나안을 점령하기 위해 정탐군을 보냅니다. 가나안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여리고성을 지나가야 합니다. 여리고는 당시에 아주 큰 성이었습니다. 도시였습니다. 여리고는 야자수가 잘 자랄 수 있게 물이 많은 지역입니다. 영어로 DATES라는 것이 여리고에서 나오는 것이 제일 맛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사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그 여리고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라합입니다. 그 사람은 평범한 여성이 아니라 특별하게 사는 여성이었습니다. 남자들에게도 여자들에게도 비난을 받으며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은 지금 그 많고 많은 사람 중에서 이 여인을 향하여 카메라를 향하고 있습니다. 왜 하필이면 이 여인입니까? 그 훌륭하고 똑똑하고 잘 사는 여인들도 많을 텐데 왜 이런 여인의 이름을 거론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설명) 어느 사람이나 내가 되고 싶어서 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되고 싶어서 되는 경우도 물론 있겠지만 거의 대부분은 되고 싶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없어서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국에 오고 싶어서 온 분 계십니까? 미국에 살고 싶어서 살고 있습니까?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내가 하고 싶어서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고 있으니까 하게 된 것입니까?
그러면 이 라합이라는 여인을 보십시다. 이 여인이 어떤 여인입니까? 성경은 1절에 아예 라합은 ‘기생’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이 쉬운 말입니까? 어려운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말을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과부를 과부라고 하고, 아픈 사람을 병자라고 하고, 공부 못하는 사람을 꼴찌라고 하고, 혼자 사는 남자를 홀아비라고 과감하게 말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혼자 살고 싶어서 혼자 삽니까? 내가 가난하게 살고 싶어서 가난하게 삽니까? 내가 대학을 가고 싶지 않아서 대학을 가지 않은 것입니까? 그런데 우리는 그런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아니고 남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니까 그냥 뱉어 냅니다. 따라 해 보십시다. “말 조심합시다.”“생각좀 하고 말합시다.”
이 여인이 어느 날 갑자기 두 사람을 만납니다. 그 사람들은 여리고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 사람들은 다른 민족, 히브리 민족의 사람들입니다. 이 두사람이 라합이 있는 집에 며칠 묵게 됩니다. 이 며칠 묵고 있는 동안에 여리고 왕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그리고 여리고 왕이 사람들을 보내어 라합에게 말합니다. “네게로 와서 네 집에 들어간 그 사람들을 끌어내라 그들은 이 온 땅을 정탐하러 왔느니라”
지금 이 상황이 어떤 상황입니까? 잘못하다가는 죽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4절에 보니까 “그 여인이 그 두 사람을 이미 숨긴지라”이미 사람들이 와서 찾기 전에 벌써 숨겼습니다. 정탐하러 온 두 사람과 많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나서 라합이 정탐하러 온 이유를 알고 이 두사람을 숨겼습니다.
잘 했습니까? 못했습니까? 잘 했습니다. 문제는 그 잘했다고 칭찬받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라합입니다. 인정받지 못하고, 칭찬받지 못하고,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는 비천한 여성, 그 라합이 잘했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잘 했습니까? 지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땅으로 인도하려고 하는 그 하나님의 역사에 귀한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 라합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수님의 족보에 여자가 네 명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라합, 우리아의아내 밧세바, 룻, 마리아입니다. 어떤 족보에 들어가 있습니까? 예수님의 거룩한 족보입니다.
라합같은 사람도 예수님의 족보에 들어간 이유는 하나님의 일에는 어느 누구도 구별없이 차별없이 참여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자신을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남또한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나는 안된다, 별 볼 일 없다 너는 싹이 노랗다 너는 평생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다 해서는 안됩니다.
예)바보 온달과 평강공주 이야기 잘 아시죠?
평강공주는 울보입니다. 아버지 임금이 공주에게 자꾸만 울면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낸다 했습니다. 그런데 평강공주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보 온달에게 시집을 간다고 합니다. 아버지 임금이 쫓아냅니다. 평강공주는 온달을 찾아가서 글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무술을 배우게 합니다. 이게 말이 쉽지 실제로는 어렵습니다. 따라 해 보세요.“말은 쉬워도 해 보면 어렵다.”이게 바로 우리가 배워야 합니다. 라합이 결단을 내리고 이 정탐군을 숨기는 일은 말이 쉽지 그리 쉬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적용) 우리가 살아 가는 동안에 지금 내가 해야 할 가장 올바르고 선한 일이 무엇인가를 결정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기회가 흘러가기 때문입니다.서로 격려하십시다. “한번 해보세요.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2. 환경을 이긴 믿음
말씀을 보니까 라합에게는 가족이 있었습니다. 부모형제 친척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것을 우리는 환경이라고 합니다. 환경은 쉽게 포기하기 어려운 것들을 환경이라고 합니다. 가장 일차적으로 내 삶과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이 환경입니다. 이 환경의 특징은 친밀감입니다. 친밀감이 있는 것은 과감히 거절하거나 끊기 어려운 것입니다.
예) 예수님께 한 서기관이 나아와서 예수님께서 어디든지 가시는 곳에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 때 한 제자가 예수님께 나아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고 예수님을 따라가겠다고 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냉정하게 말씀하십니다.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이 말을 오해하면 사람들을 관계하지 말고 오직 예수님만 따라오라는 말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이것입니다. 무엇이 중요하냐? 어떤 것을 먼저하고, 어떤 것을 나중에 해야 하느냐 하는 것을 결정하라는 것입니다.
설명) 라합이라는 여인이 어떻게 살았겠습니까?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라합 한 사람이 많은 식구들을 먹여 살린다라고 해 보십시다. 그런데 지금 가나안 사람이 아닌 다른 지방의 사람이 와서 자기의 생활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만일 이 일이 발각이라도 나면 자기는 물론 가족 식구 모두 다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위험을 당하면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합니까? 숨기지도 말아야 하고, 그 정탐군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했습니까? 그 정탐군들을 숨겨 주었습니다. 왜 숨겨 주었습니까? 그 정탐군들이 돈을 많이 주었습니까? 그 정탐군이 친척입니까? 그 정탐군이 맘에 들었습니까? 그 이유를 히브리서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히 11:31)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
라합이 정탐군을 숨겨 둔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믿음이었습니다. 그 믿음은 말씀에 대한 순종이었습니다. 그 말씀이 어떤 말씀입니까? 라합의 믿음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들을 넘어서게 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여리고를 배반했습니다. 자신의 죽음을 뛰어 넘었습니다. 육적인 형편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영의 생각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예) 믿음이란 무엇인가? 조건이 아니라 무조건입니다. 라합은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과 경험에서 얻어진 모든 지식을 정탐군이 하는 그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이성으로 안되고, 판단으로 안되는 이야기인데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리고 정탐군이 오기 전에 이미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들을 어떻게 인도하고 대적들을 전쟁에서 이긴 사실을 듣고 알았습니다. 문제는 들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 들은 소식을 믿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그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믿어야 합니다.
이제 여리고성은 무너질 것이고 라합은 살려 준다는 그 약속을 믿었습니다. 이 믿음은 노아의 믿음이요, 아브라함의 믿음입니다.
노아는 홍수가 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만 믿고 방주를 지었습니다. 오랜 세월동안 방주를 지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낳을 수 있는 조건도아닌데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신다는 그 약속을 믿고 기다렸습니다.
설명) 믿음이란 그대로 수용하는 것입니다. 내 이성과 정신과 마음으로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 반만 삼키고 반은 버린다고 해 보세요. 음식이 얼마나 맛이 없겠어요? 그런 사람 있습니까? 그것은 안 먹는 것만 못한 것입니다. 그야말로 입맛만 버리는 것입니다.
예) 비행기를 타 보신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비행기를 타고 갈 때 어떤 생각을 가지고 탑니까? 떨어질 것이라고 갑니까? 아니면 무사히 갈 것이라고 탑니까? 남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운전하는 사람 옆에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합니다. 운전은 핸들을 잡은 사람이 하는데 믿지 못하니까 옆에 앉아서 손을 움직입니다. 브레이크를 잡으려고 자기 발을 움직입니다. 그리고 계속 이래라 저래라 합니다.
여러분! 사람이 믿지 못하면 얼마나 불편합니까? 음식점에 가서 그냥 먹어야지 독이 있느니, 기생충이 있느니, 대장균이 있느니 하면서 먹으면 어떻게 먹겠습니까?
사람도 그렇습니다. 저 사람이 좋은 사람이거니 하고 살아야지 저 사람이 언젠가는 나를 배신할 거야 하면 어떻게 사람의 관계를 맺어 가겠습니까? 서로 인사합시다. “당신을 믿습니다.” 당신을 믿는다고 해서 당신을 신앙하지 말고, 믿고 살자는 말입니다.
적용)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길을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하나님은 우리를 죽음의 형벌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우리를 위해 죽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편34:10)
(막 16: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1) 귀신을 쫓아내며 2) 새 방언을 말하며
(막 16:18) 3) 뱀을 집어올리며 4)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5)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마가복음16:17-18)
이 믿음을 갖기를 원합니다. 환경을 극복하고 승리하는 믿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가족을 살린 믿음
라합은 정탐군들을 숨겨 주고 그들에게 말합니다.
(수 2:12) 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도록 여호와의 이름으로 내게 맹세하고 내게 증표를 내라.“
라합이 라합으로서 그 이름이 드러난 이유는 라합 자신만이 아니라 그가 속하여 있는 모든 가족을 살려낸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라합은 이렇게 그 명단을 공개합니다. 앞으로 여리고성이 멸망당할 때 살려 줄 명단을 말합니다. 13절입니다. “그리고 나의 부모와 나의 남녀 형제와 그들에게 속한 모든 사람을 살려 주어 우리 목숨을 죽음에서 건져내라”
누구를 살려 내라는 말입니까? 모든 사람들입니다. 라합에게 속한 친족들입니다. 이것은 라합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구원을 얻은 것을 말합니다.
설명) 신앙은 나 혼자만의 구원이 아니라 모두의 구원을 이루어야 합니다. 나 혼자만의 구원이라면 전도와 선교를 말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했습니다.
설명) 로마서에서 말씀합니다. “할 수 있거든 너희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이 말씀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라는 명령입니다. 신앙인 들 중에는 이기적인 신앙인들도 있고, 이타적인 신앙인들이 있습니다. 이기적인 신앙인들은 나만 잘 믿으면 됩니다. 이타적인 신앙인들은 다른 사람의 영혼을 살리려고 노력합니다.
예)2차대전때 유대인을 고용해서 공장을 운영하면서 유대인을 포로수용소에 가지 않게 했던 유명한 사람을 아시죠? 오스카 쉰들러라는 사람입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유대인을 자기 공장으로 데리고 오려고 많은 돈을 들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을 포로수용소에 가지 않고 살려 냈습니다. 무려 1,200명을 살려 냈습니다.
이제 전쟁이 끝났을 때 쉰들러는 그렇게 많은 사람을 살려 냈는데도 후회를 합니다. “ 쉰들러: "더 살릴 수 있었어, 더 살릴 수 있었을 지도 몰라, 좀 더 구할 수 있었을 거야. 좀 더 구할 수도……."
옆에 있는 슈텐이 말합니다.
"당신 덕분에 천2백명이 살았어요. 보세요."
"돈을 좀 더 벌었더라면……. 난, 난 너무 많은 돈을 낭비했네. 자넨 상상도 못해. 내가 만약……."
"사장님 덕에 많은 후손이 태어날 겁니다."
"충분하지 못 했어."
"그 이상을 하셨어요."
"이 차, 괴트가 사줬을 텐데……. 왜 팔지 않았을까? 열 명은 더 구했을 텐데……. 열 명, 열 명이나 말이야……! 이 금빼지로는 두 명……! 두 명은 구했을 거야. 아니, 적어도, 한 명은 더 구했을 거야……. 한 사람……! 한 사람은 더 구했을 거라고…. 한 명은 더……. 한 사람을 말이야. 슈텐, 이거 하나로……! 더 구할 수 있었는데……! 내가 안 한 거야!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만일 내가 그 당시로 돌아가 내가 쉰들러라면 그렇게 살고 그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2017년을 사는 우리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인생은 기회입니다. 그 기회가 어떤 기회입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적용) 우리는 많은 사람을 구원해야 합니다. 나 혼자만의 신앙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신앙을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결론
라합은 힘이 없고 연약하고 비천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신도 구원얻고 가족도 구원얻도록 했습니다. 여리고에 살면서 여리고 왕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경외했습니다.
이 세상에 그 어떤 것도 하나님보다 더 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꼐서 말씀하신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기를 원합니다. 라합처럼 자신을 이기고, 가족을 구원하고, 이웃을 구하는 믿음이 있기를 원합니다.
 

믿음의 증거(마가복음16:14-18), 김범수 목사, 워싱턴동산교회, 2017.8.27. 
믿음으로 사는 것이 축복입니다(시편103:1-22), 김범수 목사, 주일예배, 2017.8.13.